김해곤의 깃발작업과 회화:
 현대인의 비극적 정경에서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김 원 방(홍익대 교수)


공공미술작가, 기획자 그리고 화가



  김해곤은 오늘날 소위 ‘깃발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기획자로 알려져 있다. 
소위 ‘깃발미술’이란 용어는  작가도 언급한 바 있지만 편의를 위해 쓰였을 뿐 
미학적으로는 적절치 않은 용어이다.
그것은 전통적 미술용어를 빌자면 “다량의 깃발 혹은 천을 사용한 야외미술 

또는 환경미술” 정도로 볼 수 있고, 최근 추세로 보자면 공공미술이나 생태
미술의 한 방법론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전 작업은 크게 회화작업과 깃발설치작업으로 양분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 논평을 하기에 앞서 작가로서의 활동 연혁을 간략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91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직후부터 96년까지 회화작업으로 거의 매년 간 4회의 개인전을 행한 활력에 넘치는 작가였다. 98년 돌연 회화작업을 멈추고 그는 진취적 작가들을 규합해서 ’21세기 청년작가회’를 창립하였고 그 첫 번째 기념행사로 ‘깃발미술제’를 기획하였다. 이것은 약 200여명의 젊은 작가들이 참가하고 평면, 입체, 설치를 아우르는 대규모 야외미술축제였으며, 일반 대중의 제약없는 참여를 위해 한강시민공원에서 개최되었다. 김해곤의 깃발설치작업은 바로 이때 시작된 것이다.
 당시 그 협회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은, 예술을 ‘미학적 운동의 폐쇄적 틀’로부터 해방시켜 ‘실제적 삶의 영역’ 속으로 확장시키며 대중과 사회와의 직접적 소통을 추구한다고 하는 탈제도적, 아방가르드적 기치에 공감하는 작가들이었고, 한강깃발미술제는 그러한 의식이 집단적으로 표출된 전시였다. 이와 관련하여 김해곤은 도록 서문에서 “미술은 사회구성원의 생활을 모태로 하여 드러나는 것이며, 사회구성원이 외면하는 미술은 문화로서 자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실천하는 미술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단법인 21c 청년작가협회가 추구하는 깃발미술제의 키워드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 이후로 김해곤은 단독으로 또는 강술생, 최문수 같은 작가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대중의 집단적 참여를 유도하는 대형 깃발설치 작업과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두각을 나타냈다. 

 예를 들어 2000년에는 ‘탄광촌미술관 프로젝트’를 주도하였고, ‘2002 한일월드컵 기념 설치’, ‘광복 61주년 기념 서울시청 모뉴멘트 프로젝트'(2006), ‘2008 환경올림픽 람사르총회’ 등 초대형 야외설치작업들을 다수 수행했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마을미술프로젝트’의 총괄감독직을 수행하면서 국내 공공미술의 지평을 열어 나가는 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 내력으로 미루어 볼 때, 김해곤은 예술의 지배적 제도 속에 안주하기보다는 “예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총체적 반성과 실험정신을 가진 작가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김해곤의 작업의 구체적 면모에 대해서는 단순히 ‘대규모의 깃발설치’ 정도로만 알려져 있을 뿐, 그의 작업이 지향하는 미학과 그리고 특히 그가 1991-1996년까지 행한 회화작업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가 무척 적다는 점이다. 나는 그의 초기 회화작업이 짧은 시간이나마 매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으며, 큰 맥락에서는 이후 깃발설치작업과도 연관성을 지니는 작업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은 현대인의 삶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문제의식, 오늘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실존적 물음, 넘치는 충동과 상상, 그리고 이에 더하여 김해곤 만의 발상에서 나온 특이한 화면 구성과 실험들이 결합된 작품들로서, 이 초기 회화작업은 깃발작업과는 별도로 중요하게 논의될 가치가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 전체의 지평을 그려보기 위해서는 비록 짧은 시기였지만 회화작업에 대해 상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크던 작던 그와의 관련성을 배제하지 않는 전제 위에서 이후의 깃발작업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초기 회화작업: 욕망과 파멸의 인간군상


‌  김해곤이 미술대학을 다니고 회화작업을 발표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 ~ 90년 초의 한국 미술계의 분위기는, 이미 대세를 이룬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와 이론들, 여전히 첨예한 민중-포스트모던 논쟁과 정치적 대립, 구세대인 단색조 추상미술 세대(부적절하게 ‘한국적 모더니즘’이라고도 불렸던)와 30대 젊은 세대 간의 단절, 그 외 다양한 새로운 실험 들이 혼재하던 시기로서 한국현대미술사에 있어 역동적인 변화의 시기로 기억되는 시기이다.
불안과 공포의 한계상황에 놓인 현대인의 모습을 형상주의적 기법을 그려 낸 김해곤의 회화는 당시 통용되던 용어를 빌자면 사회비판적 함의를 담은 ‘비평적 형상회화’ 정도로 규정될 만 하다. 특히 1회, 2회 개인전의 작업은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블라디미르 벨리코비치(Vladimir Velickovic), 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Leonardo Cremonini) 같이 현대인의 모습을 어둡게 그려낸 60년대 유럽의 ‘新형상미술'(Nouvelle figuration) 작가들과 비교되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의 초기 회화가 지닌 사회비판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그가 민중미술을 지향한 것은 결코 아니다. 민중미술은 비평적 형상회화까지도 정치적으로 소극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더욱 직설적인 정치프로퍼갠더와 투쟁의 기능을 최상위에 놓았고 예술작품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미학적 가능성을 배제해 버렸는데, 이러한 민중미술에 대해서 김해곤의 작업은 애초부터 근본적인 거리를 두고 있었다. 김해곤은 현대인이 보편적으로 처한 실존적 상황 전체에 주목하면서, 이를 단순한 리얼리즘 기법이 아니라 다양한 포스트모던 회화의 방법론들, 예를 들면 구체적 형상과 추상적 기호의 병치, 다중적 시점, 사진이미지의 차용 등의 기법을 적극 구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그가 초기 회화에서 묘사한 정경은 ‘끝 없는 욕망의 순환회로 속에 갇혀있는 채 불가능한 초월을 갈구하며 파멸해 가는 현대 인간군상의 모습’ 정도로 표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첫번째 개인전의 작품들만 보아도, 지옥과 같은 지하세계에서 미친 듯 질주하는 불안한 군중의 모습, 피범벅의 고깃덩어리로 해체된 채 십자가에 책형 당하는 인간, 영혼이 없는 표정으로 거리를 걷는 도시인들의 모습 등을 병치시켜 그러한 비극적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비평이론의 관점에서는 작품내용과 무관한 사항이 되겠으나, ’20세기 末’, ‘도시의 그늘’, ’21세기를 향한 自我’ 등과 같은 작품제목들만 보아도 작가가 그러한 주제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음을 추정할 수 있다.

‌상부와 하부: 공간의 코드화


‌  작품에서 어떤 정조(비극적, 희극적, 예쁘다, 추하다 등의 느낌sentiment)를 느끼거나, 작품을 ‘불안에 싸인 도시인의 모습’이니 ‘현대사회의 고발’이니 하는 어떤 서술적 이야기와 은유의 기능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수동적인 작품감상일 뿐 미술평론의 목표는 아니다. 미술평론은 작품 앞에서 체험된 정조나 의미가 어떤 경로로 생성되는가 하는 그 구조(물질적 감각적 구조, 즉 記表signifier의 텍스트적 구조), 독해의 가능성과 한계(다양한 중의重意를 읽어내기 뿐만 아니라, 롤랑 바르트가 말한 바 위반적이고 창조적인 오독誤讀, 후기에 강조한 ‘Text적 읽기’)를 주목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해곤이 작품의 정조를 연출하기 위해 고안한 ‘상하의 수직적 위계공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마치 우물의 단면을 보여주듯 화면을 상승하는 상부와 추락하는 하부 간의 긴장관계로 시각화하는 구도인데, 1회 개인전 작품들의 경우 어두운 지하의 바닥을 연상시키는 공간
(< 숨은 조화 >, < 에덴의 꽃 >), 건물의 지하와 상층을 연상시키는 구조(, < 21세기를 위한 自我 >), 십자가 책형과 같은 수직구도(< 21세기 末 >), 또는 많은 인파로 채워진 수직 계단
(<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공간연출에 의해, 하부의 공간은 타락, 욕망, 죽음, 공포의 나락, 즉 ‘무의미의 세계’로 코드화되고, 상부의 공간은 성공, 구원, 초월, 빛, 즉 ‘의미의 세계’로 코드화되는 텍스트 구조가 생겨난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구조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의미들을 띠게 된다. 우선 그것은 사회 상층부를 향한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모습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해곤은 첫 개인전 도록에서 “사람은 오르고 싶어한다. 그리고 내려올 줄 모르고 있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맹목적 탐욕의 문제를 언급하고 이것이 작품의 주제임을 시사한다. 또는 더 좀더 이야기를 보태서 그 그림은 무한히 반복되는 탐욕의 순환고리에 갇혀 파멸하면서 영적인 구원을 갈구하는 인간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양의 모든 교회건축은 하늘을 향해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구조를 통해 상층부를 신의 세계(혹은 진리, 구원, 영생)로, 하층부를 타락한 육체의 세계(혹은 죄악, 죽음)로 의미화하는 시각텍스트를 구축해 왔다는 사실은 김해곤의 작업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

‌비판이 아닌 욕망의 실행장치



‌  이와 같이 ‘공포와 번뇌에 휩싸인 인간들의 모습’이라는 사회비평적 해석은 그 자체로는 결코 오류일 수 는 없다. 단 여기서 우리는 예술작품의 ‘의미론적 구조’의 맥락에서 추가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특정한 해석’은 항상 일시적, 상대적, 부분적으로만 타당한 것일 뿐이며, 그러한 해석은 필연적으로 다른 가능한 의미들을 누락시키면서 일종의 ‘암점'(暗點, scotoma)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든지 증발할 수도 있는 ‘의미의 상대성’을 간과한 채 해석의 진위논쟁에 빠지기보다는, 
김해곤 회화의 좀더 근본적인 측면들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하나는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장치'(apparatus)라는 측면이다.
우선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볼 때, 김해곤 작품에 포함된 모든 내용들 즉 타락한 인간들의 모습이나 심지어 무생물의 이미지까지도 남김 없이 화가 자신과 관객의 욕망을 

‘구현’하기 위한 시각적 요소들로 간주될 수 있다. 앞서의 사회학적 해석, 즉 ‘타락에 대한 비판’이라는 훈계의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 볼 경우, 작품은 사실상 김해곤이라는 한 
사회적 주체의 이데올로기적 신조나 삶의 에피소드 등 작품에 직접적으로 들어있지 않는 정황적 정보들에 예속되어 버리고 작품 그 자체의 존재는 사실 상 사라져 버린다
(바로 민중미술의 ‘아포리아’였던 것). 이 경우 그림 속의 어떤 인물은 ‘선한 주인공’으로 간주되고, 어떠 인물은 화가가 가증스러워 하지만 하는 수 없이 그린 ‘악한 상대방’으로, 일종의 ‘필요악’처럼 간주된다(예술 속에 ‘필요악’이 있을 수 있다니!). 반면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욕망의 구조를 깊이 바라보면, 김해곤의 회화는 모든 인간의 정신과 몸 깊은 곳에 내재한 ‘타락의 욕망’, 그리고 그 타락을 통해 초월하고 해방되려는 모순된 욕망(타락이 주는 쾌락), 바로 이러한 욕망들을 캔버스 위에 배열된 ‘惡의 이미지’를 통해서 실제로 작동시키는 회로라고 이해 될 수 있다. 달리 말해 김해곤의 ‘惡의 정경’은 사실 상 외부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 깊은 곳에 보편적으로 내재한 내적 세계이고, 그의 그림은 惡의 정경을 거리를 두고 바라 보는 ‘객관적 재현’이라기 보다는 인간 내면의 악 그 자체를 체험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의 사상을 빌자면, 악과 공포라는 극한에 다가 감으로써 더욱 극적으로 증폭된 삶의 의미를 체험하는 소위 ‘내적 체험'(inner experience)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김해곤의 회화는 단순히 “이게 우리 현대인들의 가련한 모습이니 모두 반성합시다”라는 지식인 특유의 훈계로 정의 될 수 없는 것이다(80년대 민중미술이 90년대 이후 흐지부지 침체해 버린 이유는 바로 비판과 훈계라고 하는 ‘지식인의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은 ‘저열한 욕망과 쾌락’을 주목했었어야 하는건데!).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장치’라고 하는 두번째 측면이 제기된다. 김해곤의 회화는 구경꾼의 위치에 서서 타인들의 욕망(그것을 저열하다고 비판하면서)을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 자체를 화가나 관객 스스로 실행하는 체현(體現, bodily experience)의 장치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그의 회화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발산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인 산물일 뿐이고, 결국 그 공포와 악의 이미지들을 통해 욕망과 환상을 충족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인 일종의 게임장치인 것이다. 이 점은 작가 김해곤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면 ─ 하지만 그의 무의식과 몸은 이미 알고 있었을 ─ 일 수 있다. 자신이 강조하려 했던 ‘인간과 사회의 악한 모습’이 실은 자신이 가진 ‘악에의 욕망’이었을 수도 있었고, 자신의 그림이 그걸 이미 작동시키고 있었다는 점 말이다.

‌분열과 알레고리



‌  제 1회 개인전 때에도 부분적으로 사용된 바이지만, 그 이후의 작품부터는 화면을 더욱 분열시킴으로써 다중화된 시선을 도입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예를 들면 그것은 ‘해독하기 힘든 비의적(秘意的) 기호를 배치하기'(작품 < 더 큰 거인 > 1992, < 해바라기 가족 > 1993), ‘엑스레이 사진 같은 차용된 이미지의 배치'(< 달마의 딜레마 > 1993), ‘여러 개의 캔버스로 분리된 화면들’, ‘공간감이 사라진채 어지러운 추상적 붓질과 색면으로 대체된 배경'(< 아이들의 이야기 > 1993)과 같은 양상들로 나타난다.
인물 주변에 배치된 추상적 기호나 신체 엑스레이 사진의 경우, 일차적으로 관객들은 그 기호나 엑스레이 사진 자체가 지닌 ‘본래적 의미’를 읽어내려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 달마의 딜레마 >에서 어딘가 불안한 분위기로 묘사된 남자의 측면에 배치된 엑스레이 사진은 손쉽게 죽음의 불안 같은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 해바라기가족 >의 경우 양쪽에 그려진 상징적 기호들은 ‘평화로운 가정’에 다가오는 불길한 재앙의 예감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그 기호나 엑스레이 사진들은 명백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은유'(metaphor)의 수사법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호와 사진이 꼭 그런 식으로 읽혀야 한다는 객관적 근거는 없다. 중요한 점은 그 기호들이 ‘그림의 문맥 내부에서 작동하는 내러티브적 요소(즉 죽음의 불안)’이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림의 문맥 외부의 사건에 대한 우연한 암시’ 즉 ‘알레고리’의 성격도 지닌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 해바라기 가족 >의 그 기호들은 ‘평화스러운 가족 초상’이라는 뻔한 의미를 뒤흔들면서 나아가 그림 밖의 공간, 즉 관객의 실제 살고 있는 삶과 역사의 공간에도 의미심장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알레고리로 인해 관객은 그 그림이 단지 갤러리 벽에 걸린 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벗어나 비약적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가족 초상 옆에 배치된 척추의 이미지나 모호한 기호들은 한편으로는 그 가족에 대한 설명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객과 사회에 대해 직접 말을 건네는 알레고리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롤랑 바르트가 말한 풍크툼(punctum) 즉 ‘작품 앞에서 관객이 우연히 발견한 자신의 실제 상황’ 같은 것이다. 작품의 ‘본래적 내용’과 거리가 있을 수 있는 이러한 알레고리 측면을 중시해야 이유는 그것이 포스트모던 회화에서 폭넓게 나타나는 ‘작품의 구조적 분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작품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의 ‘재현’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해체됨을 의미하며, 김해곤은 자신의 형상회화에 그러한 분열과 알레고리를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획으로 분리된 다중적 화면’과 ‘추상적 붓질과 색면으로 대체된 배경’ 역시 포스트모던 회화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고, 이 역시 기존의 비평적 형상회화와 명백히 구분되는 면모이다. 이러한 방법은 그림의 내용에 다른 시점과 공간들을 공존시킴으로써 앞서 논의된 기호나 사진의 경우처럼 인식론적 분열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단지 비극적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화면의 분열된 구조 자체가 발생시키는 심리적 불안감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특징은 95년 개인전 < 혼돈의 달마 >전 작품들에서 새롭게 심화되어 공간은 더욱 혼돈스럽게 분리되고 뒤얽힌다. 여기에 더해서 욕망, 번뇌, 육욕적 쾌락을 연상시키는 듯한 강렬한 원색의 풍경, 그 속에 삽입된 평범한 남자와 부처의 얼굴은 극히 고조된 심리적 불안감을 연출한다. 작가는 여기서 번뇌와 해탈 같은 불교적 주제를 환기하려 한 것으로 보이나 이 작품들이 진정 흥미로운 이유는 그러한 철학적 ‘주제의식’ ─ 라깡의 용어로 ‘상상계’에 속하는 주관적 믿음 ─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미학적 구조 자체에 있다.

‌깃발작업으로의 전환



‌  김해곤이 98년에 갑자기 야외작업으로 전환한 것은 기본적으로는 제도적 틀 안에서만 소통되는 회화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동기에 기인한 것이었고, 이후 제주도로 이주한 후 자연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심화되게 된다. 그러한 전환은 예술을 오직 현대미술사 내부에 갇힌 문제로 그리고 미술관과 갤러리의 문제로 보는 것을 중단하고, 무한한 자연과 관객과의 직접적 소통을 찾고자 하는 비약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해곤 자신도 밝혔듯이 그의 깃발작업은 깃발이라는 오브제 자체에 주목하는 작업이 아니라 바람, 무한한 자연, 나아가 세계와 인간 간의 분리 불가능한 관계를 체험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집단적 체험을 증폭시키려는 의도였다. 김해곤은 “깃발은 단순히 깃발에 대한 조형성을 탐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각개의 예술성이 아닌 공동의 표상으로 자리잡기를 원합니다. 깃발은 힘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집단의 숭고한 정신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 깃발의 힘은 건물 외부에서 자연의 공간과 함께 하는 시민의 정서를 대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라고 2002년 < 깃발전 >도록에서 밝히고 있다. 그의 사용하는 깃발에는 특수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깃발로서의 기능, 즉 정치적 상징이나, 마크, 구호 같은 것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 깃발들은 정확히 말해 깃발이라기보다는 단지 바람과 대기, 빛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모양의 천들일 뿐이다. 이와 같이 김해곤의 깃발설치작업의 핵심적 목표는 ‘대중과의 직접적 소통’과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요약된다.

‌자연 그리고 주체의 소멸



‌  여기서 중요한 점은 김해곤이 강조하는 ‘대중의 집단참여’라는 개념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작업에 개입되는 ‘집단참여적 대중’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주체들의 참여를 통해 작품의 가치가 확보된다’는 의미에서의 대중, 즉 정치와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정의된 대중이 아니다.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표시가 전혀 없는 단순한 천들에 불과한 그의 깃발은 거대한 자연의 체험으로 몰입시키는 탈-개인화의 수단이며, 최근 공공미술 담론에서 진부하게 되뇌이는 ‘하버마스적 공론장’이나 ‘공동체적 삶’, ‘자율적 주체’ 그 어느 것과도 거리가 멀다. ‘공론장’이란 관점에서의 대중은 사실상 ‘분리된 개개의 주체들 사이의 정치적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정의된 주체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개인의 실존과 바타이유적 ‘내적 체험’ 같은 것은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 김해곤의 깃발작업은 객관적으로는 공공미술의 형태를 띠되, 공공미술에 참여하는 주체의 의미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해주는 경우이다. 김해곤의 작업이 만들어내는 집단참여적 주체들은, 결코 하버마스 이론 등 진부한 자기 반복에 빠진 뉴장르 공공미술이론이 ‘구제’하려는 주체들, 즉 ‘국가의 전체적 체제에 의해 소외되었고 따라서 새로 주체화되어야 하는 약자 주체들’이 아니라, 상호주체적(intersubjective)으로 융해되고 탈개인화, 탈주체화된 ─ 소외로서의 ‘익명화’가 아닌 ─ 대중을 의미한다. 그것은 ‘공공 영역’이라는 정치적 경계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의 성립 자체를 해체시키는 ‘탈-공공화’ 된(depublicized) 주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해곤의 작업은 작금에 유행하는 ‘뉴장르 공공미술’의 천편일률적 기치들, 예를 들어 ‘지역공동체의 참여’, ‘도시재생’, ‘공익'(public interest) 등과 같이 단지 정치적 권리와 복지의 개념 ─ 그것이 지배체제에서 나왔건, 반대로 이에 대항하는 저항적 소수로부터 나왔건 ─ 에 예속된 공공미술에 대해 색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만개의 원색 깃발들, 무한한 하늘, 자연과의 몰아적(沒我的) 합일의 순간은, ‘독립적인 나’라고 하는 사회적 의식이 흩뿌려지고 ‘無化’되는 순간, 니이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 향연의 순간이다. 그것은 정치적 집단의 의식이나 저항을 위한 공동체 의식이 아니라 프로이트가 말한 ‘죽음충동’의 집단적 표출에 근접하는 체험이다.
김해곤이 지향하는 자연의 체험이란, 무한, 숭고, 불가해성, 평안한 죽음, 나아가 공포의 체험을 의미한다. 그것은 공포와 숭고의 대상을 통해서 자신의 의식 속에 문화적으로 주입된 상징적 질서(모든 도덕률, 자기정체성, 사회적 주체라는 의식)를 무로 되돌리는 일종의 내적 체험이다. 김해곤은 자연의 여러 요소 중에서도 특히 바람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바람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묶어주는 영원한 시간이요 공간이다. 그 안에는 감미로움과 부드러움, 절제의 미, 긴장감, 그리고 공포의 미가 내포되어 있다. (…) 깃발은 바람에 나부끼며 다양한 형상과 끊임없는 생명력을 표현한다. (…) 때론 지루함과 인내력을 필요로 하다가 절정의 힘으로 다가올 때 긴장감을 넘어 공포를 느끼게 한다. 공포는 곧 절정이다”(2008년 제주산업정보대학교에서의 개인전 도록).
  ‘자연에 의해 압도됨’은 역설적으로 고립된 주체가 개방되어 자연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정확히 말하면 자연과 ‘상호교환’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문화학자 로제 카이유아(Roger Caillois)는, 독립된 생물학적 유기체는 모든 외부환경 예를 들면 자연과 같은 주변환경이 주는 감각적 자극들에 의해 항상 침입, 점령되고, 결과적으로 유기체는 그 환경을 닮게 되고 그 환경의 속성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 타자(외부환경)가 생물학적 주체의 내부로 밀려 들어옴을 뜻하고 그 점은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카이유아는 그것을 ‘자기의 박탈'(depossession of self)라고 정의하였는데, 쉽게 말해 그것이 ‘나와 자연 간의 교환’이고 작은 죽음과 초월이며 앞서 말한 탈공공화된 개인인 것이다.

‌맺는 말



  그의 작업전체를 조망해보면, 깃발작업은 회화작업과 비교해 볼 때 단절이고 도약이었음이 분명하나, 두개의 작업에 내재한 무의식적 측면을 바라보면 양자 간에 연속성 또한 분명 있다고 생각된다. 회화작업은 표면적으로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평적 발언 정도로 받아들여 질 수 있지만, 좀더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악과 공포를 직시함으로써 극한적 세계를 체험하려는 욕망이 작동하고 있었고, 이러한 면은 무한한 자연 속에서의 전율적 체험의 추구로 지속되고 있다. 김해곤은 깃발작업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제 3회 회화 개인전인 < 혼돈의 달마 >전 도록에 쓴 글에서 “자연은 내게 있어 神이며 종교이다”라고 말하며 자연에 대한 열망을 표명한 적이 있다. 그 열망은 회화작업에서 나타났던 것, 즉 삶과 죽음, 선과 악이 만나는 극한상황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궁극의 ‘실재'(the real)를, 극에 달한 실존의 감각을 체험하려는 열망과 유사한 열망이라 생각된다.
 
김해곤의 향후 작업에 대해서는 미리 예견하거나 계획할 수 있는 바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의 독특한 회화작업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다. 지난 몇 년간 지나치게 상업화 된 국내 미술계의 분위기를 고려해 보면 많은 작가들이 어두운 주제는 의도적으로 피하고 너무 표피적 재미와 무난한 홀 장식을 염두에 둔 그림만 그리는 상황에서, 인간의 선과 악, 미와 추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그의 그림은 언제든지 빛을 발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깃발작업은 한편으로는 점차 쇠퇴하는 자연미술 분야에 생기를 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환경에 개입하는 공공미술의 새로운 방법으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라 기대한다.